난초는 색이 화려하지 않고 크기도 작지만, 청초한 아름다움과 그윽한 꽃향기로 뭇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은 “풀이 되려거든 난초가 되라”고 했다. ‘주역’에서는 “마음을 합한 사람끼리의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同心之言 其臭如蘭)”고 했다.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난초가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 반열에 오른 이유다.
우리나라 문인들은 난초 가운데 풍란(風蘭)을 귀하게 여겼다.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의 바닷가 바위나 나무줄기에 붙어 자라는 풍란은 한여름에 흰색 꽃이 피는데, 꽃뿔 부분이 새 꼬리처럼 뻗어난다고 해서 ‘꼬리난초’라고도 한다. 이슬 먹고 자라는 것이어서 애착이 크지 않았을까.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하다/ 썩은 향나무 껍질에 옥 같은 뿌리를 서려 두고/ 청량한 물줄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노산 이은상의 시조 ‘풍란’의 한 구절이다. 가람 이병기는 ‘풍란’이라는 글에서 “난초의 푸른 잎을 보고 방열(芳烈)한 향을 맡을 순간엔 문득 환희의 별유세계(別有世界)에 들어 무아·무상의 경지에 도달하기도 한다”고 했다. 위당 정인보는 만해 한용운 추모시에서 “풍란화 매운 향내 당신에 견줄 쏜가. 이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빛날까”라고 했다.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택한 만해의 기상을 매운 향내에 비유한 것이다.
지리산에는 풍란에 관한 전설이 남아 있다. 천신의 딸 마고할미가 남편 반야도사를 기다리다 지쳐 그를 그리며 만든 나무껍질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을 거두었는데, 찢긴 옷이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는 것이다.
풍란은 이처럼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과도한 관심 탓에 멸종 위기에 처했다. 원예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대부분 채취됐고 1989년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됐다. 2013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 절벽에서 대규모 풍란 자생지를 발견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풍란 종자 증식작업에 나서 최근 풍란 500개체를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무인도에 옮겨심었다. 앞으로 풍란 2500개체를 한려해상·다도해해상 국립공원 곳곳에 복원할 계획이다. 2∼3년 후 스스로 증식을 해 개체수를 늘리면 식물복원 사업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풍란이 널리 퍼져서 많은 이들에게 청아한 꽃향기를 전해주기를 바란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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